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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부신 연둣빛이 가득한 산골마을의 고샅길을 이리저리 따라가는데 무슨 이유가 있겠는가.
게다가 이른 아침부터 분주하게 오가는 농부들의 모습은 변함없는 시골의 정겨운 풍경이다.
4륜 택시가 지나가며 낯선 모습으로 눈길을 끌어보지만 길가에 제멋대로 피어난 들꽃들이 반갑다. 아침 햇살이 따갑게 내리 쬐는 길을 걸어야 하지만 그래도 농부들에겐 더할 나위 없이 소중한 햇살이 아닌가. 나그네만 불편한 심기로 논길을 걷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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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교적 일찌감치 심어놓은 덕분에 감자며 고구마의 줄기가 한창 자라 수도권의 알량한 텃밭과 너무나도 대조적인 모습이다.
콘크리트로 포장된 도로를 걷다 추모공원에 이르러 깔끔하게 포장된 아스팔트길을 만난다.
"차로 와도 되는데 왜 구태여 걸어서 오는거야…"라며 누군가의 입에서 불만이 쏟아져 나온다. 그럴 만도 한 것이 일부 구간은 승용차로도 통행이 가능한 길을 걸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일까 동강마을에서 방곡마을의 추모공원으로 이어지는 길은 아무리 생각해봐도 억울한 생각이 드는가보다. 추모공원에 이르러 나무 그늘이 시원한 쉼터가 되어 잠시 쉬어갈 수 있게 배려해준다. 이곳 추모공원은 한국전쟁 중인 1951년 2월7일 한국군에 의해 아무런 죄 없이 집단 학살된 산청, 함양 등 4개 지역의 양민 705명을 추모하기 위해 조성된 곳이다.
■ 상사폭포, 쌍재, 고동재
나무 표지를 따라 개울을 건너 숲길로 들어가는 길가에 뽕나무 열매인 오디가 까맣게 익어가고 있어서 지나는 이들의 손과 입을 까맣게 물들여 준다. 뒤에 오는 이들도 같은 즐거움을 누릴 수 있을 거란 생각에 절로 웃음이 난다. 콘크리트와 아스팔트로 포장된 길을 버리고 숲으로 들어선다. 신발을 벗어들고픈 욕망이 이는 순간이다.
숲길은 햇살을 막아주어 시원한 청량감을 느끼게 해주지만 쌍재에 이르기 위해선 어쩔 수 없이 땀을 흘릴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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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새 후텁지근한 공기가 밀려오는 듯하더니 멀리서부터 세찬 물소리가 폭포의 위용을 미리 알려주려는 듯 들려온다. 이윽고 도착한 상사폭포 앞에서 안내판의 내용을 보던 허윤섭(62·부산)씨가 "남자가 여자를 좋아했다 혼자 죽어삐가 폭포가 된기라능데 말이나 되노. 전설이 황당하구려…"라며 전설이라도 너무나 허황된 얘기라며 진실성이 떨어진다고 말한다.
계곡의 물소리가 점점 멀어지는 산비탈을 따라 오르다 보니 산약초를 재배하는 지역에 '통행을 허락해주신 마을주민께 감사드립니다'란 나무 팻말이 서있다. 둘레길을 공개적으로 열어 놓는 것이 원주민들의 삶의 터전을 공개하는 것과도 같을 터이니 참으로 감사해야 할 일이다.
힘들이지 않고 올라온 길에 농막 하나가 가로막고 섰다. 준비해간 간식을 먹으며 쉬어가기 좋다. 8년 전 고향으로 귀농해 약초를 재배하고 있다는 주인장의 인심 덕분에 얼음물 한사발로 더위를 잊어본다.
충분히 쉬었는데도 쌍재로 오르는 비포장도로에 서자 한층 뜨거워진 햇살에 온몸이 달궈지는 느낌이다. 조금 전의 그늘이 너무나도 그리워지는 순간이다. 그리운 마음이 닿아서일까 얼마 후 나무푯말 하나가 지키고 섰다가 곧장 넘어가면 수철마을로 이어지는 편한 길을 버리고 왕산의 그늘로 안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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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야국(伽倻國)의 역사로 빚은 수철마을
쌍재로 넘어와 고동재로 오르는 소나무 숲길에 접어들자 6세기경 융성하던 가야국을 신라에게 넘겨주고 지리산 자락에 들어와 은거하던 가야국 10대 왕이었던 구형왕(仇衡王)의 모습이 언뜻 스쳐간다.
근대 역사에서 고동재는 수철마을에서 하룻밤을 보낸 국군 제 11사단 9연대 3대대 병력들이 빨치산 토벌을 명목으로 지났던 길이다. 이후 가현마을, 방곡마을, 점촌마을은 쑥대밭이 되고 말았다.
그 잔인했던 시절도 세월 속에 묻히고 이별도 상실감도, 꽃잎처럼 사라져간 푸른 목숨들의 억울함도 모두 잊고 그저 길과 벗하며 걷는 것으로 위안을 삼는다. 인정머리 없이 메마른 콘크리트길로 여운 없는 그림자만 남긴 채 터덜거리며 걸어간다. 추억만 남기고 돌아서는 지리산 자락에서 해질녘에나 돌아설까하다 무쇠점마을, 수철마을에서 역사 속의 쇠를 두들기던 망치소리만 기억해내곤 돌아선다.
무엇이 이리도 급하게 만드는 것일까. 그렇지 않아도 인생의 끝을 향해 서둘러 가고 있음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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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행 안내
■ 도보구간
동강마을~점촌마을~추모관~방곡마을~상사폭포~쌍재~고동재~수철마을 (12㎞, 5시간)
■ 교통
함양버스터미널에서 금계행 버스를 이용, 원기마을에서 하차. 배차간격 30분, 소요시간 30분
산청교통 (055)973-5191, 산청버스터미널 (055)972-1616, 함양지리산고속 (055)963-3745
함양버스터미널(고속버스) (055)963-3281~2
■ 둘레길 Tip(주의사항)
현재 개통된 구간은 전북 남원 주천에서 경남 산청의 수철마을까지이며 5개의 구간으로 나뉘어 있다. 농민들의 삶의 터전인 둘레길은 관광객들이 몰려들며 각종 문제점들이 지적되고 있는데 가장 큰 문제는 쓰레기와 농산물에 대한 피해가 그것이다.
또한 농사짓는 풍경을 담는다고 농민들이 일하는 모습을 함부로 담아가는 경우도 예의에 어긋나는 일이며 자제해야 할 일이다. 사진을 찍기 전 반드시 동의를 구하도록 한다.
식수는 추모공원, 쌍재 쉼터에서 구할 수 있으며 추모공원 아래 간이 매점과 쌍재 쉼터에서는 간단한 음식도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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